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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내가 예쁜
큐피드의 독화살/최금녀 본문
『큐피드의 독화살』
최금녀
최금녀의 시집 『큐피드의 독화살』은 ‘삶은 죽음에 기생하여 죽음을 먹고 산다. 이런 인간의 필멸성에 대한 인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불멸을 욕망하는 원동력으로 작동한다’는 김이듬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시집 『큐피드의 독화살』을 관통하는 본류는 ‘죽음’이다. 죽음을 전면에 둔 채 그로 하여금 ‘불멸을 욕망하는 원동력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시다. 그가 ‘시인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에게는 ‘신앙에 몰입한 사람이 그 신앙 외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 것처럼 시도 신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한다’는 고백에서 보듯 그에게 시는 죽음마저 넘는 신앙이 이미 되어 버렸다.
나, 한세상 질펀하게 살고
자장가 같은 요령소리 들으며
저 세상으로 여행 갈 때,
내 삶의 초과중량 끝내 비워내지 못해
검색대에 빨간불이 켜지고
차단막이 내려졌을 때
—「3개월 할부로 정산」부분
그의 죽음에 대한 천착은 죽음 이후의 통과의례를 치루는 지점까지 나아가 있다. 즉 죽음을 완성하는 과정에 대한 사유를 넘어서 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비장하지 않고 당연히 밟아야 하는 과정으로서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바로 ‘시’가 있다.
누구나 내게 말했다
한번 명중되면
그 독이 온몸에 구멍 뚫는다고
목숨 다 하도록 구멍 뚫는다고
큐피드의 화살보다 천 배나 강한 독성으로
—「큐피드의 독화살」부분
그는 시에 명중되었다. 목숨 다 하도록 구멍을 뚫는, 큐피드의 화살보다 천 배나 강한 독성의 시에 중독되었다. 죽음이 무섭지가 않다. 아니, 어쩌면 시로 인하여 죽음이 기껍다. 시에 중독되어 독이 퍼지는 황홀경 속에서 죽기를 외려 희망한다.
느지막하게 내린 신끼로 굿을 치고 다니는데
선무당 사람잡는 소리가 등을 훑어내리고
옷 속으로 식은 땀 쭉 쭉 흐른다
애무당 하루라도 날춤을 추지 않으면
아쟁이, 대금소리에 삭신이 아프고 저려서
색색이 옷 차려입고 신 바람을 맞으며
동서남북 발길 안 닿는데 없다
—「자화상」부분
자화상은 자신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다. 최금녀 시인은 자신을 선무당이라 여기고 있고 또 느지막하게 신끼를 받은 것으로 느끼고 있다. 문제는 그 자신의 몸, ‘하루라도 날춤을 추지 않으면/아쟁이, 대금소리에 삭신이 아프고 저’린 존재다. 늦게 시인이 되었지만, 선무당처럼 아직 완전치 못한 시인이지만 쓰지 않으면 삭신이 아프고 저린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까 시가 전부인 존재, 시인의 말에서 밝혔듯이 시가 ‘신앙’인 존재가 되었다. 시인으로서 완전을 꿈꾸기에 그는 말한다.
시가 안되는 날엔
지리산으로나 들어가
바위 아래 두 귀를 열어놓고
접신하고
이보耳報를 청해볼까.
—「접신接神한다」부분
그의 관심은 오직 시에 있다. 그러니 시가 안 되는 날이야 말로 그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다. 신에게 의탁을 하고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닦아서라도 시 쓰기를 열망한다. 입산하여 접신을 하고 이보를 청해보려는 심사야말로 좋은 시를 열망하는 그의 서원이 아닐 수 없다.
낙관을 해서 보낸 책
이름 뒤에 찍혀있는
붉은 낙관을 보고 있으면
그 붉은 빛깔이 핏빛으로 변해
방금 토해낸
아직 식지도 않은 객혈로 보인다
—「낙관落款」부분
그의 시에 대한 집중은 다각도에서 나타난다. 이 시만 하더라도 ‘붉은 낙관’을 해서 보낸 시집을 보면 그것을 ‘아직 식지도 않은 객혈로’ 볼 정도다.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본류’를 죽음이라 본 것도 이렇게 다방면에서 보이는 시에 대한 집중 때문이다. 이 시에 대한 집중은 귀기에 가까운데, 이는 시가 그 과도함이 죽음마저, 죽음의 통과제의마저 바꿀 정도의 강력한 마력을 가진 것이기에 가능하다.
나 살 만큼 살고 시 쓸 만큼 쓰고
컴퓨터 앞에서 물러나는 날
국화꽃 지천일 영안실 한쪽 벽
영정사진 놓는 그 자리에
사진 대신 시인답게
힘주어 쓴
육필시 한 편 놓으면 어떨까
시가 상좌에 대접받는 사건이 되지 않을까,
내 생전에 가까웠던 몇 분이
마지막 나를 배웅하러 오면
서가에 남아 쓸쓸할 내 시집
남기지 말고
정성들여 포장하여
나누어 드림은 어떨까,
마지막 영혼의 증표라고……
그렇게 되면 고인이라는 이름 붙지 않은,
살아있는 이름으로
시집 한 권 더 상재한 셈이니
총총한 내 영혼의 발길도 가벼워지리라.
—「육필시 한 편」전문
화자는 죽어서도 시인이기를 원한다. ‘사진 대신 시인답게/힘주어 쓴/육필시 한 편 놓으면 어떨까’ 소망한다. 영정사진이라는 것은 사진이 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맞는 상징물이다. 조문하는 사람이 죽은 이와의 관계를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는 대용물이다. 화자는 그런 대용물마저도 바꿔 죽은 이가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길 희망한다. 여기서 시는 그냥 시가 아니라 ‘육필시’다. 죽은 이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쓴 시. 그렇게 육필시가 영정사진을 대신할 때, ‘살아있는 이름으로/시집 한 권 더 상재한 셈이’되고 그래서 ‘영혼의 발길도 가벼워지리라’ 보니, 이는 죽어서도 시가 중심인 셈이다. ‘마지막 영혼의 증표’로 육필시를 바치려는 마음은 결코 가벼운 마음일 수가 없고, 시에 대한 순정한 마음이 없으면 그 발상조차 할 수 없는 깊은 영혼이 가진 시심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시 자체에 대한 탐색과 죽음을 벗어난 시로 이 시집의 대척점에 있는 시가 아래 시다.
가을 배추를 심었다
순한 배추국을 목으로 넘길 때마다
가까운 이름들이 생각나서
된장 푼 배추국을 한 솥단지 끓여놓고
부를 사람 몇 머릿속에 그리며
눈뜨기가 무섭게 마당으로 나간다
밤새 더 넓어진 구멍들
새로 생긴 바늘 끝 만한 구멍들
벌써 달팽이는 잔디밭으로 몸을 숨기고
배추잎 위에 방아깨비 두 마리
정신없이 겹쳐있다
가을 벌레들도
눈을 화등잔만 하게 크게 뜨고
순한 배추국 한 솥단지를 맛나게 먹어대는
이 아침의 겸상.
—「가을 식사」전문
죽음과 시 자체에 대한 천착이 워낙 강해서 그 사이의 시들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이 시집의 아쉬운 부분이다. 위에 시는 최금녀 시인이 시 자체에 대한 천착을 넘어 이제 가야 할 어떤 길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알렙』에 나오는 한 구절이 깊게 다가온다.
성벽이 허물어지도록 만드는 시간이라는 것이 도리어 시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부주간_윤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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