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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내가 예쁜
한 편의 시를 말한다/전명숙 본문
풍경 4
윤관영
돌무덤에는 청사들이 우글거렸다
찔레꽃이 껌딱지처럼 흔들거렸다 그랬다
미루나무가 검어진 여러 달토록
리어카 끌고 간 여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빨랫줄에는 국숫발이 흔들거렸고
우물 펌프는 쥐 소리를 냈다 그랬다
큰남아가 계집애를 업고 미루나무를 바라보았다
찔레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판의 메밀묵은 손등처럼 터져 있었다
버력더미는 뱀들로 들썩거렸다
지구팽이는 돌아도 제자리에서 돌았다
루핑 지붕에서는 초콜릿 같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랬고 그랬다 그랬다
소문은 국숫발처럼 휘날렸고
쌓인 연탄은 젖어
무너졌고
미루나무는 달빛에
검었고
찔레순 같은 계집애는 등에서
뱀 울음 소리를 냈고
그랬다 思春期 이명,
기저귀 날리듯 국숫발 날리는
여인이 아직인,
맨대가리 기계충 같은,
찔레꽃 핀 날이었다
『시와사상』 2011년 겨울호
그랬고 그랬고 그랬다
전명숙
자주 다니는 야산 산책길에 오래된 공동묘지가 있다. 밤마다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이야기만 남은 애장터, 사람들의 발길에 반쯤 파먹힌 흙무덤들, 귀퉁이가 닳고 비뚜름해진 비석들, 저희들끼리만 푸른 가이즈까향나무들, 그 사이로 난 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로 다져져 반질반질하다. 어느 날, 그렇게 버려진 무덤들을 지나 늘 앉아 쉬곤 하는 바위 근처에서 뱀을 만났다. 누군가 흘리고 간 낡은 허리띠같이 헐렁한, 꼭 그만큼의 길이와 눈에 잘 뜨지 않는 옅은 쥐색의 몸을 가진 그와 내가 참 난처하게도 딱 맞닥뜨려 버렸다. 우리는 서로 난감해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지구 위를 수평으로만 살아가는 그와 수직으로만 서 있는 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 왔기에 뜻밖의 마주침이 무척 당혹스러웠다. 잠깐 동안 공유한 난감함을 추스르고 그가 먼저 슬그머니 바위 아래로 사라졌다. 나는 그가 스미듯 자취를 감춘 바위 위에 말없이 앉았다. 그랬다. 그 날부터였다. 나는 그 바위에 앉을 때마다 그의 안부가 궁금했다. 보라색 덩굴식물에 잠긴 바위 아래 지금 그가 있을까. 산지기의 후루라기 소리와 소나무 이파리에 갈기를 빗는 바람소리를 듣고 있을까. 홀로 똬리를 틀고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 건 아닐까. 바위를 한번씩 손으로 쓸어보며 산의 임자가 마치 그라도 되는 양 입속말로 안부를 물었다. 안녕, 잘 있니? … 몇 년 동안 딱 한 번밖에 마주친 일이 없는 한 마리의 그 특별한 뱀과, 그에게는 특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한 명의 인간, 우리 사이는 그랬다. 그랬을 뿐이었다.
윤관영의 풍경 속 “돌무덤에는 청사가 우글거”린다. 징그러운 그 뱀들에게 돌멩이를 집어 던지지도 못하고 ‘등’에 업은 ‘계집애’를 내려놓지도 못한 채 “리어카를 끌고 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큰남아’가 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는 저물녘, ‘검’은 ‘미루나무’는 너무 높고 하얀 ‘찔레꽃’ 향기는 아무리 씹어도 삼킬 수 없는 배고픔처럼 그의 결핍을 채울 수 없는 소용없는 무엇이다. 처음에는 달콤했으나 끝내는 아무것도 아니어서 뱉어 버려야 하는 ‘껌딱지’처럼 어떤 기억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천진한 어린 시절은 지나갔다. 그렇게도 소중하던 장난감들, 늘 가지고 놀던 ‘지구팽이’는 아무리 때려도 ‘제자리에서 돌’ 뿐이라는 것을 알아 버린, 더는 아이가 아닌 ‘큰남아’가 ‘검’은 “미루나무를 바라보”며 서 있다. ‘메밀묵’처럼 터진 ‘손등’으로 어디론가 내빼고만 싶은 “민대머리 기계충 같은”.
여기에서, 이 부분에서 그와 나의 풍경은 겹쳐진다. 구충제를 먹고 빙글빙글 돌아가던 노란 하늘이며 부스럼 때문에 빡빡 밀어버린 부끄러운 머리통을 하고 동무와 마주친 개울가, 걸핏하면 바람에 들썩이던 ‘루핑지붕’, 까딱 잘못하면 세찬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루핑지붕이 한밤중 잠자리에 누운 어린 나에게 별을 보여주기도 했었지. 찐득찐득 기름에 전 루핑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그가 느꼈던 것처럼 ‘초콜릿’ 같았던가. 방 여기저기에 놓아 둔 깡통에 떨어지는 재미나는 빗방울 소리. 천장 이 쪽 저 쪽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찍찍거리던 쥐소리, 쥐의 나라를 상상하며 생쥐 눈처럼 또록또록하던 내 눈동자…
그러나 그 다음 풍경은 계집애인 내가 더 따라가지 못하는 ‘큰남아’의 난감하고 막막하고 아픈 ‘思春期’의 풍경이다. 마중물을 부어도 ‘펌프’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던 대신 ‘쥐 소리’가 나고 ‘등’에 업힌 ‘찔레순 같은’ 여동생의 울음 소리는 ‘뱀 울음 소리’처럼 지긋지긋하고, ‘여러 달토록’ 어머니는 같은 “여인은 돌아오지 않”고, “버력더미는 뱀들로 들썩거”리는, 여태 아무렇지도 않았던 모든 풍경을 갑자기 돌려세워 버리는 잔인한 사춘기의 풍경. 그곳에는 ‘돌아오지 않’는 ‘여인’의 소문이 ‘빨랫줄’에 “기저귀 날리듯 국숫발”처럼 휘날리고 “쌓인 연탄이 젖어 무너”져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무력하기만한 ‘큰남아’의 모습이 혼자 우두커니 서 있다. 그래서 그는 다음 풍경으로 더 나아가기 싫다. 그래서 “그랬고 그랬다 그랬다” 그랬을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이 말에서 또 그와 나의 풍경이 겹쳐진다. 그래 그랬을 뿐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 아버지는 노름에 미쳐 있었고 할머니는 천식 때문에 숨이 넘어가 듯 기침을 해댔고 어머니는 한밤중에 저수지 둑으로 올라갔고 비바람이 방안으로 들이쳤고 어린 계집애였던 나에게도 슬며서 사춘기가 찾아왔고, 모든 것이 싫어지고, 그랬고 그랬고 그랬다 그랬다 그랬을 뿐이다.
그런 것들을 지불하고 우리는 어른이 됐다. “찔레순 같은 계집애”는 여인이 되고 ‘달빛’ 아래 ‘검’은 ‘미루나무’를 올려다보던 ‘큰남아’는 남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런 아픈 풍경들이 느닷없이 찾아와 문득문득 앞을 가로막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는 자라지 않는 풍경 속의 아이들이 왜 자꾸 우리를 찾아오는 것일까.
슬프게도 현실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때 그 아이들처럼 지금도 거대한 현실이 아무리 버둥거려도 깨지 못하는 악몽 같은 풍경으로 우리 앞에 버티고 있다. 그런데도 해마다 계절이 돌아오고 ‘찔레꽃이 핀’다. 돌아오지 않는, 돌아오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만 같은 ‘여인’을 아직도 기다린다.
전명숙 : 『시와사상』등단
시집 : 『염소좌 아래 잠들다』(천년의시작)
메일 : islejm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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