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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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섹스보다 안녕/김도언

也獸 2013. 1. 27. 17:32

 

섹스보다 안녕

                  김도언

 

 

  섹스보다 안녕, 멀리서 담배 연기처럼 흔들리는 당신이 내게 말했다. 내일 아침엔 배가 뜰거야. 우수와 농담을 다 버리고 이곳을 떠나자. 망명지에서 교복을 입은 소녀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거기에 있다. 서러운 짐승의 영은 숲으로 돌아가라. 섹스보다 안녕, 초원에서 추는 왈츠의 리듬과 절지동물들의 이름을 외울 것, 우리의 연애는 거기에서 시작되었지. 습관적으로 접두사를 사용하고 커피에 각설탕을 넣지 않을 때 당신은 완성된다. 안녕의 상상력을 흉내 낼 수 없는 섹스를 내버려 두자. 미지는 미지에서 오는 것, 섹스보다 안녕, 멀리서 바다처럼 흔들리는 당신이 내게 말했다. 화석처럼 굳어 있는 사랑을 만지고 마침내 우리는 헤어지자. 당신은 내가 모르는 최후의 사람, 우리는 모두 섹스보다 안녕, 당신은 아는가, 우리의 섹스는 우리가 통과했던 가난처럼 귀여웠다. 당신이 흔들린다, 당신을 흔든다.

<시작> 2012여름호

 

* 이준규 대담을 보다가 좋은 시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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