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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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시

쑥의 뼈/임형신

也獸 2014. 4. 8. 19:26

 

 

 

쑥의 뼈

임형신

 

 

낮은 자리마다 쑥이 자란다 지상에 흩어진 뼈들이 자라 약쑥을 키운다 내려앉은 봉분 위로 물쑥 한 다발 밀어 올린다 창생蒼生의 뼈들 쑥뿌리로 살아남아 촉촉이 젖은 다북쑥 키우고 있다 뼈마디 마디가 애쑥의 쑥대로 자라고 있다

 

 

갓 시집온 아낙이 물쑥 한 바구니 이고 간다 그 쑥 밥이 되고 떡이 되어 흉년의 주린 배 채우고 그 쑥 차가 되고 뜸이 되어 젖은 골수 덥히어 대대代代로 이어 왔다 향긋한 약쑥 모깃불 되어 풋잠 자는 평상 위 고단한 뼈 펴 주었다

 

 

아버지의 뼈 할아버지의 뼈가 키운 쑥이 아들 손자의 뼈를 키우고 지상의 곳곳마다 생육하고 번성한다 끝내 없어지지 않을, 가장 처음이자 가장 마지막까지 남을 쑥의 뼈, 뼈의 쑥이 구름처럼 빈터에 일어나 마른 땅을 움켜쥐고 있다

 

 

*시집 『서강에 다녀오다』출간을 감축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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