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이준규 발문 본문

주방 통신

이준규 발문

也獸 2015. 5. 29. 22:22

윤관영, 시

-이준규

1

시시한 얘기만 하고 싶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시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시가 좋으면, 그 시가 왜 좋은지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시가 과연 좋은 시일까? 나는 시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시를 핑계 삼아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시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해도 그 시를 말하는 것은 아닐 거라는 말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그러니 시시한 얘기를 하고 간단하게 시 얘기를 하는 것으로 이 글을 써보려고 한다.

 

윤관영 형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본다. 여의도 중학교 운동장. 글발 축구단의 경기가 있던 날. 멋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운동복 차림이지만 누구보다 깨끗했고 손에 들고 있던 축구화 가방도 남달랐다. 그 가방에는 축구화를 두 켤레 넣을 수 있었는데, 그런 가방은 선수들이나 사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미소 지었는데, 축구를 잘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체형을 보면 축구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또 머리는 꼬불꼬불한 파마 머리였다. 예상대로 형은 축구를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때론 지나치게 열심히 해서 경기 중에 정신을 놓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요령이 없었다. 체력이 떨어졌는데도 계속 열심히 뛰면 판단력을 잃게 된다. 그 모습은 조금 슬프기까지 하다. 처음 한 생각, 저 실력에 축구가 뭐 그렇게 좋을까. 몇 년 전 얘기다. 관영이 형은 이제 꽤 늘었다. 이제는 빈 공간으로 패스를 받기 위해 이동할 줄도 알고 급하게 공을 처리하지 않고 우리 선수의 위치를 확인하고 패스하기도 한다. 이런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는 축구를 비록 늦게 시작했지만 꾸준히, 조금씩 발전했다. 그는 글발 축구단의 뚜렷한 주전 수비수다. 축구팀 회식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 사주겠다고 했다. 서교호텔 옆의 횟집에서 만났다. 광명수산인가. 아무튼 무슨 수산이었다. 형과 나의 지난 삶은 판이하다. 공통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장 큰 차이는 나는 평생 아무 직업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형은 어릴 때부터 계속 닥치는 대로 일했다는 것. 그런 다른 점은 결정적인 것이어서, 보통 친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형은 나의 그런 점에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어떤 호기심이 아니다. 일하지 않고 버틴다는 게 어떤 일인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보통은 안 좋게 보는 일을 좋게 봐준 셈이다. 나는 그런 형이 고마웠다. 사실 일 없이 사는 건 힘들다. 형의 옷차림은 이날도 깨끗했다. 휴일의 부자 같다고나 할까. 나는 형에게서 어떤 자존심을 느낀 것 같다. 촌스럽기도 하지만 싫지 않은. 형이 옷을 못 입는 건 전혀 아니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이날 회에 술을 마시고 장소를 옮겨 곱창에 술을 마셨다. 나는 이가 좋지 않아 잘 먹지 못했다. 형은 곱창을 좋아하는 것 같다. 며칠 전에도 곱창을 사주었으니 말이다. 당시 형은 국수집에서 국수 삶는 일을 하고 있었다. 곧 아들과 국수집을 열 것이라고 했다. 형은 전에 냉면집에서 일한 적도 있다고 했다. 형의 직업 편력이야 첫 시집 뒤의 자술 약력에 자세하다. 독자들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다른 날. 술에 취해 형이 일하던 가게 앞을 지나갔다. 마침 형이 가게 앞에 나와 있었던가, 아니면 내가 인사나 하고 가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던가. 형은 앉으라고 하며 국수 먹고 가라고 했다. 나는 취해 있었고 국수를 먹고 싶지 않았다. 나는 국수를 맛있게 먹었고 차비까지 받아 어디론가 갔다. 바로 집으로 간 것 같지는 않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잘해주는 형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그 후론 한 달에 한 번 축구장에서 만났다. 회식 자리에서 술잔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특별히 더 친해지지는 않았다. 몇 년이 지나고 나는 망원동으로 이사했다. 윤관영 시인이 사는 동네. 그가 아들 민주와 부자부대찌개를 하는 동네로 이사 온 것이다. 나는 형과 조금씩 더 친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이제 종종 부자부대찌게에 들른다. 산책하는 길에 들러 물을 마시거나 믹스 커피를 마시고 담배 하나 피우고 올 때도 있다. 형은 내개 이것저것 주기도 한다. 동태, 감, 올갱이국, 누룽지, 돌. 돌은 수석을 말한다. 형의 취미는 다양하다. 내가 아는 것만도 바둑, 낚시, 수석, 서예, 볼링, 당구, 통기타 등이다. 형의 글씨는 ‘부대지깨 재떨이’, ‘육수’, ‘월요일은 쉽니다’, ‘라면 사리 무한 리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씨가 점잖다. 가게는 내가 합정동으로 갈 때 타는 마을 버스가 지나가는 길가에 있다. 그러니까 외출을 할 때마다 나는 형의 가게를 보게 된다는 말이다. 전엔 형이 자는 모습을 자주 봤다. 아들 민주 혼자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이젠 바쁘다. 시인이 정성껏 차리는 음식이니 맛이 없을 수도 없을 것이다. 저녁에 들르면 형은 매우 반갑게 나를 맞는다. 내 얼굴에 술이라고 써있다는 듯이 반가워한다. 나는 조금 걱정이다. 형은 나처럼 과음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매일 마시는 것 같다. 형은 늘 웃는 얼굴이지만 주방의 답답함을 견디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형을 본다. 자주 뒷모습을 본다. 음식을 만드는 고개 숙인 뒷모습. 가게의 주방에는 쪽문이 있고 그 쪽문으로 나가면 차양이 쳐진 공간에 플라스틱 테이블이 두 개 있다. 나는 그 자리를 좋아한다. 말하자면 부자부대찌개의 특실이다. 나는 그곳을 지금 ‘가닝 테라스’라고 이름 한다. (가닝은 형의 어머니가 관형이 형을 부르는 소리) 그래, 어느 날, 가닝 테라스에서 가닝 형을 때때로 보면서 오래 술을 마신 일이 있었다. 슬픈 날이었고 갈 곳은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나에게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은 무척 좋은 일이다. 가끔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가닝 테라스에 함께 앉았던 사람들의 이름을 써본다. 재미로. 김요일, 함기석, 김태용, 박장호, 박지혜, 송승언, 박지웅... 그곳이 시인들이 찾는 명소가 되기를 바란다.

 

 

오월의 햇살이 무척 따갑다. 오월의 폭염이다. 불볕더위다. 개울에서 천렵하고 술 몇 잔 하고 숲 그늘에 누워 졸고 싶다. 텃밭의 고추, 호박, 가지, 방울토마토가 꽃을 피운다. 감나무도 꽃을 피웠다. 윤관영의 시고를 읽다 집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피우며 텃밭의 꽃들과 나비, 벌, 파리를 본다. 오늘은 직박구리도 본다. 어제는 감나무 그늘에서 자고 있던 고양이를 보기도 했다. 이런 풍경, 도시 속의 이런 풍경을 보면 관영이 형이 생각난다. 나도 사투리로 가닝 형, 하고 불러보고 싶다. 반말로 가닝아, 하고 불러도 형은 웃을 것이다. 형을 생각하면 웃는 얼굴부터 떠오른다. 시고를 읽으며, 시를 분석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의 웃음을. 당장 형의 가게로 가 한잔하고 싶다. 이틀 전도 오늘과 같았다. 발문을 쓰기로 하고 계속 미루다가 이틀 전에야 시작했는데 뭘 어떻게 써야할지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망원동 월드컵 시장의 순대국집 황금옥에서 만났다. 형은 아들 민주와 순대국을 먹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반쯤 마신 소주병도 있었다. 나는 내가 형을 너무 건성으로 사귄 것 같다고 말했다. 형을 더 알아야겠다고 했다. 민주는 웃으며 나도 모르는 아버지를 어찌 아저씨가 알 수 있겠냐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누가 누구를 알 수 있겠는가. 민주는 밥을 다 먹고 자전거를 타고 갔다. 나는 형과 술을 마시며 이것저것 물었다. 첫 시집 약력에 형의 과거는 비교적 자세히 드러나 있다. 나는 그 약력을 다시 읽고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물었다. 대부분 슬픈 이야기였고 그 슬픔은 좋은 안주가 되었다. 나는 이미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형의 시에 대한 내 생각도 말했다. 아쉬운 점도 말했다. 형은 그런 점도 발문에 모두 쓰라고 했다. 나는 그럴 생각은 없다. 나는 좋은 점도 다 말할 수 없다. 아내와 동네 후배들을 불러 더 마셨다. 이제 시 얘기를 해보자.

 

 

2

 

 

자세한 분석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떤 대강은 말하고 싶다. 다른 섬세한 감상은 독자들의 것이다. 윤관영의 시는 크게 두 곳에서 발생한다. 한 곳은 시골, 한 곳은 주방. 시골은 고향이자 과거이며 가끔 들르는 곳이다. 주방은 현재다. 시골과 주방은 때론 묘하게, 또는 당연하게 겹치기도 한다. 어쩌면 늘 겹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과거를 버리지 못한다. 형은 내게 자신은 ‘망각의 기술자’라고 했다. 자신이 과거를 잊지 않는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로 나는 받아들인다. 하지만 윤관영의 시에 과거는 도처에 있다. 시골과 주방에서 발생하는 시편들은 모두 땀과 관련이 있지만 미묘하게 드러내는 것이 다르다. 시골시는 어떤 원시성이 느껴지고 주방시는 주로 깨달음과 관계한다. 시골에서의 일과 주방에서의 일은 다르다. 어디에 있거나 시인은 시를 생각한다. 가끔 첫사랑 생각도 하고 여자 생각도 하는 것 같지만 그건 드문 일이다. 주방시의 아름다운 깨달음을 보자. 나는 왜 이 문장들을 아름다운 깨달음이라고 할까. 이 문장들은 시인의 깨달음이 없어도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시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것을 깨달음의 내용이라고 제시했건, 나는 그의 아름다운 문장에 이미 내재하는 깨달음의 씨앗을 느낀다.

 

 

“애벌 삶은 사골엔 풀빛 기름이 인다” 이 문장에는 특별한 전언이 없다. 나는 사골 삶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정말로 그 빛은 풀빛일 것이다. 이 풀빛은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생각이 진화하여 “때로 삶은 김이 새야 되는 일도 있다”라는 깨달음이 발생한다. 나는 앞의 문장이 더 좋다. 풀빛의 깨달음이 있다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상상은 얼마나 큰가. 얼마나 막연해서 벅찬가. 계속 윤관영의 문장을 가져와보자. “무맛을 아는 나이가 있다” 이것은 좋지만 평범하다. 그런데 몇 줄 지나, “무청이 시래기가 되는 그 자리”, “무 속 같은 몸이고픈 저물녘이 있었다” 같은 문장은 흔히 하는 말로 울림이 크다. 윤관영만 쓸 수 있는 문장이 아닐까. 또 많다. “밥 풀 때만큼은 착해지는 손이 있다” 정말 그렇다. “급소가 없는 물이지만” 도대체 시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물에서 급소를 생각하다니. “쇠죽 냄새가 나는 그것을, 들쩍지근한 배춧잎 삶은 물을 / 산삼 우린 물인 양 들이켜고 싶었다 / 이즈막 사람 새끼가 된 것도 같고 / 우거지 맘이라는 걸 알 듯도 싶고” 이런 문장이 주는 힘 뺀 힘, 어떤 한참 운 사내에게 남은 것 같은 힘의 그림자 같은 것에 나는 감동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윤관영은 참 멋지다. 착한 웃음 뒤에 숨은 무엇. 계속 찾아보자. “냉동엔 두 번이 없다”, “음식은 죽음을 가린 화장술이다” 이상한 문장도 있다. “손은 손을 먹는다” 뭘까. 궁금하다. 어쨌든 문장 자체로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묘한 문장이다. “손 같은 손이었다” 쌀 씻는 손을 이렇게 썼다. 이것은 아마 어머니의 손일 것이다. 그것은 손이다. 진짜 손이다. “바스러지나 물에서 살아나던 시래기가 있었다” 이럴 때, 시인은 시래기와 사랑하고 있는 듯. “솥 손잡이 朝光엔 김이 섞이고” 내가 가장 놀란 문장이다. 감각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 시간은 얼마나 깊을까. 얼마나 아쉬울까. 이럴 때 윤관영은, 모든 것을 깨달은 자일 것이다. 찰나일 뿐이지만, 윤관영은 이렇게 자신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반복적으로, 가만히.

 

 

이제 그의 시골시들을 보자. 고향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과거가 많다. “삽은 흙이 적이 묻어도 무장 무겁다 / 쪽삽 보다는 각삽이 울음통이 더 넓고 길다” 깨달음의 품이 삽 같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나처럼 일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자의 눈에 이런 문장은 경이다. “새끼 감자 양념장에 먹으면 그만이다 먹먹한 맛, 바로 호박잎 쌈 맛이다 어슷 썬 약 오른 고추가 들어간 묽은 된장이 없으면 꽝이다 다 어머니가 계셔서 누리는 호사, // 나무야, 이들은 다 잘 쉰다 우리도 쉬자 밥 먹자” 할 말 없다. 시원하다. 슬프기도 하다. 왜 슬플까. 고향, 어머니 그런 것은 슬픈가. 격식 없는 건강함, 그런 것은 슬픈 것인가. “우물 펌프는 쥐 소리를 냈다” 얼마나 자세한가. 얼마나 확연한가. 그 펌프가, 그 소리가 다 환하다. “쌓인 연탄은 젖어 무너졌고 (...) 찔레순 같은 계집애는 등에서 뱀 울음 소리를 냈고” 처연하다. 뭉클하다. 그러니까 슬프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우리는 슬픔을 시로 바꾸는 자들이다. “빨간 손바닥에 흰 손금 / 그 손금을 손에 쥐고 / 나, 그 밑을 지나 / ...... 세상에 나왔다” 이 문장들은 어떤가. 입을 다물게 하는 슬픔이다. 역시 할 말 없다. 하지만 묘하게 아름다운 문장이다. “바람이 먼 훗날 말하겠지 / 이모음역행동화의 옛날이 있었다고 / 언 강물 속 흐르는 물 같은 세월, 있었다고” 이모음역행동화는 학교를 핵교로 발음하는 것을 말한다. 이 시의 제목은 ‘외로움은 자꾸 과거로 간다’. “할머니 가신 후, 손바닥으로 도마를 쓸었다 / 모 심은 논에서 알발을 옮기는 것처럼” 설명이 필요 없다. 맨발이라고 하지 않고 알발이라고 한 건 참 그럴듯하다. “(...) 종종 / 밤에는 혼자 投網, 던지러 간다 / (망은 흐르는 수면을 오린다) / (...) 밤 산이 무섭고 밤의 바람 그늘이 무섭다 / 고요가 무섭고 새벽 일이 무섭다 / (...) 비겁은 무서운 착한 마음이다” 투망이 수면을 오린다, 그리고 비겁은 착한 마음이다. 착한 관영이 형...

 

 

지금 나는 형의 주방을 떠올리고 있다. 그리고 주방의 쪽문도 떠올린다. 그 쪽문으로 들어가 형, 하고 부르고 싶다. 웃어주겠지. 어, 준규 왔어, 해주겠지. 형이 이 글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지금 부자부대찌개로 가서 술 마실까. 마시며 이 엉터리 글을 용서해달라고 할까. 아무튼 갑자기 형이 많이 보고 싶다. 형, 형은 주방의 도인이에요. 멋쟁이 시인이지요. 이 시 좋아요. 절창,입니다. 다음 시집 기대할게요. 축하합니다.

 

 

손바닥 같은 꽃잎이

 

 

밤공기 뒤집는데, 당신 생각났습니다 쪽문

담배 참입니다 부끄럼이 얼굴 돌리듯 진 목련꽃잎이 이내 흙빛입니다 목사리 한 저 개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요 돌고 돕니다 그러니까 저 다져진 흙은 열망의 두께인 셈,

땅에 잡힌 개털 흔들리는 풍편에 당신 소식 있었습니다 이 봄 속엔 적이나 여름이 있고 주방은 계절을 앞서 갑니다 싱싱한 것들은 이내 썩고 나는 애초 말려야 한다는 것을, 통풍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나는 다만 말릴 수 있을 뿐입니다

물큰한 목련꽃잎은 부삽이 묻은 손무덤입니다 요리는 소리. 연통에 손 거풀 벗기다 판나는 판에, 어떤 소식을 감지하고는 뒷다리를 세우고, 귀를 세우고, 맴돌다 선 저 눈의 개처럼, 이내, 쪽문을 향합니다 등짝의 털 날리는 풍편의 개가 반응하듯, 개구리알 같은 밥알을 설거지하는, 내 등에 어떤 기미가입니다

 

 

당신, 이 봄 한 상 받으세요. 목련 꽃잎이 내는 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