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망원 맛집, 전국부대찌개 맛집, 부자부대찌개 문예지에 나오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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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 맛집, 전국부대찌개 맛집, 부자부대찌개 문예지에 나오다

也獸 2015. 11. 14. 17:23

 

취미가 일상이 된 시인들

윤관영 시인과 父子 부대찌개

 

- 김상미

 

서울시 망원동에 가면 父子부대찌개집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운영하는 부대찌개 밥집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사방 벽이 시집과 라면사리로 둘러싸인 아주 소박하고 아담한 집이다. 오직 부대찌개하나만으로 승부를 건, 뜻이 분명하고 고집 센 집이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어떤 것을 먹을까? 고민이 되고 걱정이 되신다면 합정역 전철 1번 출구로 나와 16번 마을버스를 타고 망원 유수지 사거리 앞에서 내려 父子부대찌개집을 한 번 찾아가 보시라. 詩人인 윤관영 셰프가 한 편의 시를 쓰듯 창조해낸 부대찌개를 맛깔스럽게 한 상 차려줄 것이다. 한 편의 시를 읽듯 맛나게 그 찌개를 다 먹고 나면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것이다. 요리는 호흡이고, 호흡은 요리사의 마음이듯이 그 요리사가 시인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가게 사진을 멋지게 찍고 싶었는데 가게 앞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자신도 좀 찍어달라고 자꾸만 가로 막아(가로수 뒤쪽은 찻길이어서 더 나갈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셔터를 눌러버렸다.

최근에 출간한 윤관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오후 세 시의 주방 편지 (시로여는세상, 2015)에 수록된 시 오빠, 믿지에 나오는 그 플라타너스 가로수이다. (“무책임한 꽃이 좋다/제가 알아서 크고, 피고 지는 그런 꽃/연민을 안 가져도 좋은 꽃/좋아하는 꽃은 나무, 나무 중에 가로수/간판을 가려서 그렇지 쓰다듬게 고맙다”)는 그 가로수!

 

윤관영 시인은 20085, 첫 시집 어쩌다, 내가 예쁜(황금알, 2008)을 출간하면서 우리에게 알려진 시인이다. 그의 첫 시집은 아주 독특한 그만의 서정과 어조, 감칠맛 나는 우리말 활용, 남다른 소재와 메타포 등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즐겁게 해주었다. 그 아삭아삭하고 별난 서정성이랄까, 눅진하면서도 구뜰구뜰한 은유의 맛깔스러움이랄까, 혹은 범상치 않은 우리말 터치라고 할까, 그 코끝 찡한 공명과 바특함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어 이번에 출간된 두 번째 시집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어 읽으면 읽을수록 그 어여쁜 맛이 입안에 몽글몽글 군침을 돋게 만든다. 그만큼 그의 시세계는 속이 깊고 찰지고 옹골찬 페이소스를 발한다.

 

그는 아주 늦은 나이에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평소에도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삼아 이곳저곳 음식점에서 보조요리사 일을 했다. 그러다 고교를 졸업하는 아들을 위해 작게나마 가게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자리 찾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힘든 시절. 가게를 차려 아들이 꾸려갈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아들은 사장, 아버지는 요리사. 하여 늦은 나이에 시간을 쪼개고 쪼개 요리학원을 다니고 열심히 실전경험을 쌓고 더 나은 요리 비법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해서 마련한 父子부대찌개. 처음엔 장사가 안 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른 음식점보다 더 좋은 재료, 일체 조미료를 쓰지 않고도 더 맛있는 육수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 지금은 입소문이 나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오순도순 성실히 일하는 모습도 한몫했으리라.

 

부대찌개는 슬픈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우리나라가 가장 가난했을 때 미군부대(의정부)에서 흘러나온(먹다 남은) 소시지나 햄 등을 김치와 함께 끓여 먹은 게 부대찌개의 시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일종의 꿀꿀이죽과 비슷한, 배고프고 굶주린 민초들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은밀히 따지고 보면 부대찌개 역시 우리의 전통음식인 김치찌개와 다를 바 없고, 지금은 부대찌개만의 독창성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수제비가 별미음식이 되어 사랑받고 있듯이.

 

나를 포함한, 부대찌개를 썩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도 이상하게도 윤관영 시인이 만든 부대찌개는 모두가 맛있다고 한다. 아주 담백하고, 뒷맛이 개운하고, 아주 깔끔하다고 한다. 그것만 봐도 그는 정말 맛있는 부대찌개를 만들기 위해 무지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게 분명한 것 같다(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이곳에서는 1인분도 팔고 있다). 부대찌개뿐만이 아니라 밑반찬도 정말 맛있는 걸 보면! 그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킨다.

 

父子부대찌개가 맛있는 이유는?

 

좋은 재료를 씁니다. 햄은 TULIP A(미국) 제품을, 소시지는 저염 CORN KING(미국) 제품을, 소고기 분쇄육은 GROUND MEAT(호주) 제품을 씁니다. 콩은 BAKED BEANS(이태리) 제품이며 쌀은 농협 왕쌀 제품을 쓰고 있습니다.

 

저희는 맹물에 사골분가루를 부어 육수를 내거나 손쉽고 색만 그럴 듯한 닭발 육수를 내지 않습니다. 정확히 계량하여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4시간에 걸쳐 육수를 우려내기에 담백하고 은근한 맛이 강합니다.

 

야채는 망원 시장에서 직접 사오기에 신선하며 반찬을 포함한 모든 음식에는 화학조미료를 일체 쓰지 않고 직접 만듭니다.

 

세세하게 품목을 공개하는 것은 변치 않고 좋은 재료를 쓰겠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상하다 싶으면 주인에게 묻고 따져주시기 바랍니다.

 

------------------ 대표__ 윤민주 백

 

 

父子부대찌개 맛있게 드시는 법

 

부대찌개는 맛의 종합입니다. 여러 가지 재료가 익으면서 갖가지 재료가 내는 맛이 어울려 독특한 맛의 종합이 됩니다. 전골냄비를 상에 올리자마자 라면 먼저 넣으시면 안 됩니다. 끓여서 나오더라도 끓는 상태에서 5분은 더 끓이셔야 맛이 우러나옵니다. 음식의 맛은 기다리는 맛일지도 모릅니다. 다 드시고 국물이 조금 남은 상태에서 육수를 더 붓고 라면을 포함한 사리를 넣어 드시면 맛난 부대찌개가 됩니다. 더욱이 父子 부대찌개는 조미료를 넣지 않기에 뒤로 갈수록 맛이 더하답니다.

 

-------- 맛난 부대찌개 드시고, 좋은 부자지간 되시고, 부자 되세요. 대표__ 윤민주 백

 

(벽에 걸린 액자 속 내용)

 

아하, 그래서 이곳에서 부대찌개를 한번 맛본 사람들은 또다시 이곳을 찾게 되는구나. “누나, 우리 집 장사 잘된다. 생각보다 단골도 많아.” 하면서 환하게 웃는 윤관영 시인의 모습이 바람 맛을 아는 무청같이 대견스럽고 자신만만해 보인다.

 

그의 집 뒤쪽, 이준규 시인이 가닝(관용) 테라스라고 이름 붙인 곳에 앉아 그의 시집을 펼쳐본다. 오후 세 시의 주방 편지. 음식점에서든 가정에서든 오후 3시는 주방이 잠시 쉬는 시간이다. 아마도 그는 그때서야 슬그머니 물의 혈을 짚던 손. 밥을 푸면서 자꾸만 착해지던 손을 앞치마에 쓰윽 문지르고, 오후 세 시의 정적 속으로 걸어 들어가 시를 쓸 것이다. 언어의 혈을 짚고 그 심장박동소리를 원고지에 옮길 것이다.

 

물드는 것처럼 무서운 게 없다

김칫국물, 스며버린다

희미해질 뿐 안 지워진다

나갔던 김치에 국물을 붓고

새 걸 얹어도 층이 진다

밥물이란 게 있다

밥은 색을 넘어 어떤 기운까지 빨아들인다

숟갈 젓가락을 넘어

입술지문까지 묻어난다

나갔던 밥에 밥을 얹으면

공구리 친 것 같다고 충고하는 친구가 있다

밥에는 마음이라는 게 있다

덜어 먹는 마음,

손대지 않은 거거든요설명하는 마음

물들지 않은 밥은 못 버리겠다는 마음이 있다

밥풀 때만큼은 착해지는 손이 있다

밥장사하는 마누라 밥 버리게 하는데, 십 년이 걸렸다고

흥분하는 친구가 있다

그 진심을 듣고도 밥을 못 버리는

엉거주춤한 마음이 있다

버리고 우는 마음이 있다

 

돌아온 밥공기를 보면

사람들이 보인다

그 사람이 보인다

 

그의 시 밥에는 색이 있다에서처럼 정말 밥을 먹고 난 뒷자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고, 그 사람이 보인다. 그 진리 때문에 요리사는 있는 힘을 다해 요리에 집중하고, 그 요리를 먹는 사람들은 진심을 다해 그 요리를 맛나게 먹는다. 하여 밥이 맛있는 음식점은 어김없이 잘되고, 잘되는 음식점은 어김없이 밥이 맛있다. ‘밥의 마음을 알고 밥의 마음이 되어간다는 것은 고수가 되는 일이다. “밥을 푸다 보면, 자못 사람이 되어가는 듯하다/ /자꾸만 밥을 푸다 보면 구메구메//밥 김 속의 내가 사람이 된 것만 같듯이, 그는 서서히 밥과 일심동체가 되어가고 있다. 시와 사람이 일심동체가 되어가듯이. 나는 윤관영 시인이 그런 고수, 그런 사람, 그런 시인으로 계속 나아갔으면 좋겠다. 부대찌개 하나만으로 승부를 건, 최고의 부대찌개 전문가가 되어 서민들뿐만이 아니라 가난한 시인, 예술가들의 밥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옛날 명동 거리의 은성이나 인천집’, ‘대부집같은 인품으로나 문학적으로나 기념비적인 그런 밥집. 그래서 父子부대찌개집은 富者부대찌개집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하나 생겨났으면 좋겠다.

 

밥은 얻어먹을 때 맛이 깊다 김은 밥을 쌀 때 바스러지는 맛에 맛나고 이름마저 칼칼한 깻잎은 잎맥이 밥을 싼 여문 모과 빛에 맛나고 콩장은 이에 찡기는 맛에, 두부는 숟갈로 끊는 맛에 맛나고 모양도 감사납고 맛도 쓴 고들빼기는 순전히 이름 맛에, 총각김치는 앞니에 끊어지는 맛에 맛이 깊다 뚜껑을 덮는 밑반찬에 먹는 밥은 얻어먹을 때 비로소 모양도 맛이 된다 공기밥, 얻어먹을 땐 이름까지도 맛이 된다 청국장은 황금빛 국에 콩알 맛에 숟갈 가고 달걀은 후라이가 좋고 계란은 찜이 좋다 맛이라면야 얻어먹을 땐 라면도 좋지만 어머니의 배춧국이야말로 숟갈 씹히게 좋은 일품요리

다들 아는 당연한 맛이 볼수록 깊어진다 씹을수록 구뜰하다 받아든 한 상이

- 윤관영, 한 상 받다전문

 

 

* 윤관영 시인은 1961년 충북 보은 출신으로 1996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 2008년에 첫 시집 어쩌다, 내가 예쁜을 출간, 이 시집으로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 20156월에 두 번째 시집 오후 세 시의 주방 편지를 출간했다.

 

  <시현실> 2015 겨울호

 

망원 맛집, 부대찌개 맛집, 전국 부대찌개 맛집, 부자부대찌개 문예지에 실렸어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