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위리안치 본문

맘에 드는 시

위리안치

也獸 2022. 8. 31. 20:44

위리안치

오탁번

 

 

입과 코를 숨긴

젊은이들 눈망울이

꽃샘에 피어나는

수선화 보듯

봄은 급하게 온다

 

오늘은

백신 맞으러 간다

다 산 다늙은이지만

추사가 수선화를 보듯

좀만 더 살아보자

 

그동안 너무 싸돌아다녔다

이젠 위리안치!

새싹 올라오는 마늘밭에서

어정버정하다 보면

다 궁금코 어여쁘다

 

 

* 난 위리안치를 탱자나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방기구로 한다. 주변에는 안쓰는, 아니 쓰다가 나중에 쓸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들로 가지런하다. 가지런하다 함은 많아서 정리를 안하면 안 될 지경이기에 그렇다.

젊어서 먹고 살 생각 못하고, 자식 되어가는 꼴 그리고 밀어주기 보다는 나야말로 싸돌아다니기에 바빴고 그 놈의 의미찾기에 급급했다. 이제는 위리안치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고 주방에 붙박혀, 아들 일이 내 일인 양, 직수굿 일만 한다. 위리안치의 세월이 십여 년이 넘다 보니, 몸은 거기에 맞춰지고 낡아가고 있다.

또 칼질하다 보면 문득 다 궁금코 어여쁘게 느껴진다. , 칼질이 부드러워진다.

오탁번 샘의 시는 春日을 가장 좋게 읽었지만 표제시 飛白도 좋다. 나는 위 시 위리안치가 좋다. 와 닿는다.

'맘에 드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년생/박준  (0) 2022.11.04
사람과 집/이승용  (0) 2022.11.04
스캔들/이인원  (0) 2020.12.30
부탄/강신애  (0) 2020.12.26
물고기 호흡법/변종태  (0) 2020.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