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예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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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집 이후 발표한 시

책을 버리다 外 1편

也獸 2008. 11. 25. 18:49

책을 버리다 外 1편

          윤관영

 

책을 내다 버리고 남은 책장을

선반 겸 공구 진열대로 쓰니

그만이다

녹슨 연탄통엔 전기 재료와 선을 담고

뚜껑 잃은 lock & lock통엔 수도 부속을 담고

드릴과 드라이버, 톱, 펜치, 망치 등속은

눈 닿는 곳에 두고

공사의 시금석 정추와 물 수평은 구석에 모셔두고

전동공구는 손 안 타는 곳에 두고

두고두고 쓸 요량으로 책장을 괴고 닦고

못과 나사못은 길이별로 용도별로 페트병을 잘라 담고

스크류볼트는 술 담궜던 병에 담고

뚜껑마저 닫았다 에어로 불어내고

뒤란에 불마저 달고,

위가 든든해서는 마루에 앉아

마을꾼 별 본다

어두워 환할 야광 수평기, 앞니를 모은 끌

엉덩이가 듬직한 먹통

책장 위에 낚시 가방마저 얹은 기억에

책 잘 버렸다 소 웃음 웃는데,

연장 정리한 솜씨 보니까 일 좀 하겠는 걸

괜한 기대로 기분이 그만인

秋分, 초저녁이다 발맘발맘

옆옆이 별님들

나오시는 중이다

 

 

 

어떤 죽음

 

 

대나무에 달린 쇠꼬챙이로

옆구리를 찌르자 송어는

굴뚝 연기 날리듯 피를 뿜으며

돌아다니다,

 

떴다

 

죽음은 느리게 온다

 

설 까, 설 죽여야 돼

주먹 망치를 들고 가격의 정도를

조절하는 사내들, 初雪이 내렸다

거세돈은 연초록 구슬 눈으로 바뀌었다

 

맛 앞에 죽음은 소풍 전날처럼 느리게 온다

 

나는 닭을 키우지 않는다

해를 넘길 수 없어 잡은 닭들

두 다리로 엉덩이를 들면서

날갯짓으로 피를 쏟으며 묽어졌더랬다

 

이거 맛있는데, 하면 맛을 잃는다

상추의 하얀 진액도 맛 같다

손가락 등에 걸리는 알쌀의 뜨물이

날 묽게 한다

 

밥 익는 동안

구슬 눈을 슴벅이게 하는 시집 읽기

느리게 하고 묽어지게 하는

내가 뜸드는,

<너머>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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